
향으로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올해 5월 말 버니 솝 본품 샀는데 증정용 밤쉘 향이 더 날 사로잡아 향 선택에 서툴렀다는 결과물이. 내가 구매할 시기쯤 멈칫이 진작에 미리 디스커버리 세트 출시해주지ㅠㅠ 싶었다. 으휴 2만원대 주고 산 내가 미쳤지... 고개 절레절레. 비싸게 주고 산 버니 솝보다 조그마한 애 밤쉘이 쫄망쫄망 개인적으로는 더 향이 괜찮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어안이 벙벙. (나르시시즘과 로즈누와 너티머스크도 차차 시향해볼 건데 향조가 극명할 것 같아 구매는 뒷전이었다.)
과거의 시간 다니엘 트루스 밤쉘도 코로 길게 호흡해봤지만, 밤쉘이라 이름 붙인 것들은 표면적이게라도 서로 닮은 향이 스륵 자리잡는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듯 조금은 다른 잔향이 사뭇 아른거린다. 방금 막 샴푸물을 머금고 샴푸 꽃이 방울방울 피어난 모양의 내음이 심장 끝을 부여안고 잔향이 흩어질 때까지 절대 안 놔준다. 퍽 그만큼 짙고 깊은 향 농도감이 제 맨 살결을 훑으며 돋아난다. 그러면서도 살짝은 기분 좋은 단향이 몹시 사랑스러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만 같다. (비누꽃보단 꽃샴푸 타입)
머리 끝부분에 밤쉘 엷고 넓게 샤라락 흩뿌려주면 풍성한 거품 일렁이는 샴푸 냄새인 척 주변 공기와 향기를 모조리 거둬간다. 공기 냄새마저 뒤바뀌는 이 시간, 찰랑이는 머릿결 사이로 밤쉘향이 풍길 때마다 잔잔한 머릿결 냄새가 좋아 자꾸만 머리 쓰다듬어주고 싶어진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신비로운 꽃향이 매력적이다. 매혹적인 아름다움의 결정체를 담은 향 그 자체. 그래서 겁없이 향기롭다.
확실히 단순한 향은 아니라 여겨진다. 멈칫의 밤쉘이 코를 저리게 괴롭히다가 불시에 가버리면 뭔가 허전해져 허기가 진다. 그것의 모든 향이 은은하고 은밀하게 잔상처럼 머무른다고 해야 하나. 향 속에도 섬세한 결이 오롯이 살아 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리움이 치밀어 미치겠다. 분위기 짙은 내 향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내리 대범하지만 내면이 섬세한 느낌도 향이 난다. 또한 마냥 가볍지 않고 살짝 무게감 있는데 축 처지고 둔탁함 없는 향 분위기로 인해 거부감이 덜함. 비싼 향수가 가진 세밀한 고급짐만 찾지 않도록 초라하지도 난하지도 않은 적당함이 젖어 농후하다.
하물며 밤쉘 향수는 향 지속력마저 괜찮았다. 향수 뿌려야 되는 날 향수 뿌리는 걸 깜빡했던 적이 있다. 애꿎은 입술만 달싹이며 제 몸에 붙은 것들은 모조리 다 핸드백과 주머니 안쪽까지 휘젓고는 겨우 찾은 향수가 멈칫 밤쉘이었다. 그때가 멈칫 밤쉘을 처음 써본 날이었는데 최후의 수단으로 얘 딱 한 번 칙 뿌려주고 한나절이 지났음에도 내 몸에서 촉촉한 밤쉘향이 오소소 꽤나 선방하더라. 그날은 느닷없이 밤쉘이 톡톡 튀는 역할을 해줬다. 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도 들었다.
이 경험이 따른 과정은 밤쉘이 샘플이니까 가능했던 일. 이처럼 1.8ml 미니 용량이 휴대하기 아주 좋아 주머니나 작은 파우치에 무작위로 담고 나와 한몸이 되어 다닐 수 있다. 이런 작은 용량도 본품 살 때 두둑하게 넣어주세요, 멈칫.
향수 용기도 호리호리하고 각이 매끄럽게 떨어진 디자인이 탁상 위에 툭 두면 인테리어적으로도 예쁘다. 진한 우드 초콜릿색 용기가 손이 바들바들 떨리게 유리 형태도 아닌 것이라 혹여 바닥에 떨어뜨릴 때 덜 우려됨.
막상 멈칫의 버니솝...이 흠칫. 내게는 좀 취향 밖이라 밤쉘부터 먼저 후기 띄운다. 버니솝은 되풀이해서 적응해보려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그래 비누향이 우러나오긴 한데... 네. 사실 그 멈칫 소프트블루솝 맞나 그 향도 올영 매장 직접 가서 시향했을 때도 딱히 좋았다 못 느꼈었다. 어쩌면 매장 시향 공간은 오랜 시간이 겹쳐 지나 외부에 이것저것 섞여 향이 온전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겠다.
어쨌든 간에 밤쉘 향 하나로 피곤함에 절여진 무표정으로 잠자코 있어도 낯빛이 온도감 도는 효과ㅋ가 존재하는 듯하니 밤쉘 샘플 가슴에 묻고 알차게 비우는 중이다. (쳇바퀴 도는 하루 속 표정 없는 사람일지라도 밤쉘향 덕분에 친절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풍기는)
마지막으로 밤쉘은 훤칠한 남자가 가볍게 뿌려도 분위기 미남처럼 보일 것 같음ㅋㅋ 약간 좀 뭐랄까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요정들이나 남자들이 쓸 것 같은 우아하면서 매혹적인? 그런 낌새가 나지 않나요?ㅋㅋㅋ 시공간을 향기롭게 만드는 밤쉘의 힘. 이토록 향수란 시공간을 초월하여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는 듯. 만약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사람이 이 향을 쓴다면 내가 그 사람을 본 순간의 장면이 곧 기막힌 초상화가 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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