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이 향을 온전하게 만들어서
*리뉴얼 전 용기 제품 쓴 후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음.
처음에는 어디선가 많이 맡아본 향인데... 했지. 백화점 들어가면 열린 문 바람과 함께 서서히 싣고 몰려오는 냄새. 뒤로 갈수록 맑고 청푸른 시각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살 시원한 개운함까지. 흠. 아니다. 바디판타지 바디미스트 그린 향들과 좀 흔하게 비슷한 계열인 것 같던. 조금 덜 날카롭고 모난 점 없는. 그러면서도 스카이보틀 화이트레인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비례하게 실망도 컸었다.
깨끗하고 깔끔한 비누향이라 해서 후덥지근한 여름, 향을 통해 온몸의 솜털까지 보송하게 지내고 싶었건만 한 번만 뿌렸는데도 빨래 옷 덜 마른 축축한 냄새가... 되레 끈적이고 꿉꿉하여 찝찝 불쾌지수만 지독하리만치 되짚어줬었다. 먼 저편에서부터 터질 듯하게 습한 열기가 바짝 안 말라 꾸릿한 냄새랑 시도 때도 없이 겹쳐지니 진짜 숨이 턱턱 막혀 미칠 것 같았다. 한 인간 질식사 일보 직전. 향이 덥진 않은데 그마저도 여름엔 밖에서 쓸 시도도 못했다. 아무리 이름이 화이트 레인이어도 그렇지. 이대로 실패인 건가 방치해둬 후미진 곳에 미아가 된 참이었다.
이젠 여름 몰라 볼 정도로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자 그제서야 커튼 사이 비집고 내리쬐는 한여름 햇빛에 잘 말려 보송보송한 냄새가 뭔지 대강 느껴지는 듯했다. 이 겨울에 여름을 자극한다. 이게 보송한 것도 포근하다까진 파우더향 묵묵하게 묵직한 냄새와는 거리가 멀다. 이윽고 살냄새 서린 하얀 비냄새가 흐트러짐이 있지만 폼 단정한 모습을 거울처럼 비춘다. 알게 모르게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산뜻함이 스민다. 이윽고 촉촉함과 보송함이 공존한다. 그냥 무던하게 무난했다.
그림 스케치하듯 향 묘사해보자면, 텅 빈 공공 화장실에 길다란 비누 비치대에 있던 파란 비누가 문득 떠오른다. 그 둥그런 파란 비누 냄새가 제법이다. 아울러 체육복 입고 동급생들이랑 셔츠 땀 다 젖어가도록 힘차게 운동하다가 쉬는 시간에 수돗가로 달려가 비 맞는 것처럼 온몸에 적셔 샤워도 하고 입 벌려 물도 벌컥벌컥 마시고. 그때 고저없이 들려오는 아이들 뛰노는 소리. 해맑은 웃음 소리. 호루라기 소리. 그리고 순간순간 하늘 올려다보고 싶은 맑은 날씨. 돌이켜보면 누군가에겐 어떤 추억. 이런 삘.
화이트레인을 바로 코 박아 멋모르고 호흡하다간 알코올 향 같은 중성적인 냄새가 날카롭게 코를 쨍하게 찌를 수 있다. 1~2번만 널리 분사시켜주면 안개 물방울들이 고르게 몸에 안착되어 향이 억세지 않다. 찌릿하게 톡 쏘는 첫향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지막은 가슴 저릿하게 아련한 감성으로 잔향에 여운이 밴다. 안 그래도 싱그러움을 가장한 알코올 쓰라린 첫향이 리뉴얼 후 좀 더 부드럽게 풍기도록 만들었다고는 한다. 직접 맡아보지 않아 여기까지.
아. 스카이보틀 향들을 맡고 있자니 자꾸 지브리 애니가 주는 감성이 생생히도 떠오르는 건 왜일까. 지브리 초록 땅과 하얀 구름이 몽실한 파스텔 하늘. 사는 한 절대 못 잊을 것 같이 몽글몽글 아련하고 아늑한 분위기ㅠㅠ 그 특유 감성이 실림. 현실에 있을 것 같은데 없는 그림체스러운 하늘과 대자연 그 느낌 말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지브리 감성. 나만 그렇게 느껴졌나. 그렇다면 같이 느낄 수 없어 안타깝네요. 그럼 화이트레인은 지브리 뭐가 생각나냐고 질문한다면? 글쎄? 하울의 움직이는 성 bgm 타고 흑발 하울한테서 날 법한? 금발 하울은 아님. 흑발 하울이 이야 소피~ 하면서 두 팔 벌려 다가올 때 흰 셔츠에 나폴대는 냄새 같음. 겉보기엔 다 커버린 어른인 듯해도 늘푸른 변함없는 순수함을 지키려는 존재로. 결론. 스카이보틀 화이트레인을
딱 한마디로 정의하면, 시원한 보송함.
(단, 장마철에는 난 비추)
++) 추가. 화이트레인 뿌리자마자 비가 내리는 것 같은데 점점 마르면 하얗게 보송해지는 듯한 그런 분위기 말이에요. 싸하게 중성적인 향이 강한 것만 배제하면 안개 분사 그 느낌이 향으로 전해지는 듯한 감각임. 향이 고급지다기보다 향이 확실히 정체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