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한 번쯤은 기억하고 싶은
향 브랜드. 정작 이 향은 아니지만 기억해두고 싶은 향이라 이리 옮겨본다. 그러나 어렴풋이 기억을 회상하는 거라 향의 흐름만 넌지시 내맡긴다. 직접 산 건 아니고 어느 날 백화점 지나가다 '밤쉘' 시향지 우연히 얻었다.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은 향. 옛날에 날리던 일리 향수, 리리코스 마린 오키드 퍼퓸(아마 단종됐을 거임.) 향에다가 갓 머리 감고 나온 샴푸향을 고루 뭉쳐놓은 듯했다. 향이 평온하고 향그러워 이유없이 상냥하고 차분한 사람한테서 풍겨져나올 만한 풍미 그득했다. 엄마도 과하지도 않고 은은해서 좋다 하셨다. 딸은 킁킁 맡고 딱 우리 엄마가 좋아할 만한 향 같다고 느꼈다. 향수명과 뜻 다르게 한없이 고고하고 우아한 향이 고귀한 사람을 가리킬 것처럼 내리 무던하다. 이 향에 호흡을 의존하다보면 클로드 모네 화가 작품이 불시에 떠오른다. 화창한 날씨의 수채화스런 풍경. 문득 대상이 그립고 빛 바랜 감성. 색채의 온기와 따뜻한 빛 표현을 향으로 담은 듯한 시선이 한 점으로 모인다. 그 뒤로 여기 브랜드 다른 향들도 시향해보고 싶어졌다.
* 다음 아래선 같은 날 백화점에서 시향지 맡던 또 다른 향도 살포시 끄적이고 만다.
홀리바넘(HOLIBANUM) - Summer break
: 피치향. 어릴 때 먹던 새콤달콤 향이 난다. 말랑하고 순수한 분위기. 살점을 베어주고 싶을 만큼의 상대를 잠자코 생각하거든 이런 향이 주는 달콤함을 오롯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하루하루 꿈꾸던 아이의 상상이 풍부하게 펼쳐지는데 그걸 후각적으로 맡을 수 있는 날이 올 때. 순결한 바람을 가르고 열기에 늘어지는 여름을 깨뜨리고 싶은 숨결의 장난기도 간질간질 느껴진다. 엄마는 살구향 같다고ㅋㅋ 그렇다. 살구랑 복숭아 이미지가 앳되게 연상될 수밖에 없다. 본문 다니엘 트루스의 밤쉘과 같이 조향 해줘도 꽤 괜찮았다. 그것에 비하면 홀리바넘의 이건 어린 판타지스럽게 확산되는 컨셉? 잔향이 거의 잠결 수준임.
왠지 어른의 시선에서 아이(또는 소년과 소녀) 보면 summer break,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을 보면 다니엘 트루스의 밤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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