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연 새벽녘 늦가을 노간주나무 숲으로
회녹색 안개 입자 사이사이에 깊게 섞인 주니퍼숲의 정수를 담아낸 향수..
가지, 열매, 목재 속살의 진액까지 전부 다요.
첫 향에서부터 강렬하게 자리 잡는 주니퍼 베리는 가볍지 않은 청량감과 단단한 구조감을 만드는데 이 덕분에 가죽이라는 테마가 마냥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굉장히 신선하고 생동감 있게 다가와요. 꼭 숲을 헤쳐나가는데 쓰이는 장비라던가 장갑같이 몸에 달라붙는 느낌임.
이 향수를 맡으면 "숲의 공기" 가 떠오른다는 리뷰가 많은데 몹시 동의함.
하지만 단순히 초록의 상쾌함이 아니라, 더 깊고 원초적인 곳에서 느껴지는 초록임.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젖은 나무껍질과 마른 열매, 그리고 멀리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모닥불 연기까지!
마치 이끼 낀 땅 위에서 반기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 걸 엿보는 기분까지 들어요.
그리고 티백으로 파는 마테차가 아니라 진짜 예르바 마테를 우려 마셔본 적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마테 특유의 코와 비강에 홧홧하게 박히는 바디감과 태운 약초의 진분 같은 풍미! 이 향수는 오직 후각으로만 그걸 완벽하게 구현함.
다른 니치 향수들과도 어나더 레벨인 입체감이 있어요ㅋㅋ 플로라이쿠에 비슷한 향수가 있다고는 함
사실 이런 향은 쉽게 입고 다닐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에요 어울리는 사람도, 적절한 상황도 한정적일 수밖에 없음. 하지만 이런 제약이 오히려 특별하게 만드는듯.. 이 향을 나에게 적용시킨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이색적인 경험이 되고, 단순히 향을 입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분위기와 캐릭터로 변하는 느낌임.
다른건 몰라도 향수는 비싼값을 한다는걸 부정할 수 없는 수많은 이유중 하나임..